퀵커머스의 거점은 규제 완화를 기다리는 대형마트가 아니라 이미 규제 밖에 있는 편의점과 다이소 매장에서 먼저 깔리고 있습니다. 온라인 유통 비중이 처음으로 60%를 넘은 그 달, 국회에는 14년 묵은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를 풀자는 법안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배송할 수 있는지를 다시 정하자는 논의입니다. 그런데 정작 즉시배송의 거점은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이미 동네 한복판에 점포를 가진 쪽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규제가 매장 영업만이 아니라 온라인 주문의 포장과 반출, 배송에도 함께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쿠팡과 네이버, 컬리는 시간 제한 없이 새벽배송을 하는데, 점포를 가진 대형마트는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논쟁이 다시 불붙은 배경이 드러납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고 온라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소위원회에 회부했고, 본격적인 논의는 6월 지방선거 이후로 전망됩니다. 2012년에 도입된 규제가 14년 만에 손질될지가 다시 도마에 오른 셈입니다.

규제 논쟁이 다시 불붙는 사이, 즉시배송의 거점은 전혀 다른 곳에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편의점과 생활용품점이 자기 점포를 그대로 즉시배송 거점으로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거점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깔려 있던 점포망을 그대로 퀵커머스에 연결한 것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CU와 GS25는 배달 플랫폼과 손잡고 24시간 즉시배송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CU는 기존 새벽 시간대까지였던 배달을 24시간 체제로 바꿨고, 올해 4월 배달 매출은 1년 전보다 91.6% 늘었습니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심야 매출 증가율은 120%에 달했습니다. 전국 7500여 개 점포가 그대로 심야 물류 거점이 된 셈입니다. 편의점 즉시배송이 별도의 물류센터 없이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활용품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매출 4조 5000억 원을 넘긴 다이소는 물류 투자를 늘리며 즉시배송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규제 완화를 기다리는 동안, 규제 밖에 있는 사업자들은 이미 동네 한복판의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전환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동네에서, 한쪽의 하역장은 멈춰 있고 다른 쪽의 점포는 거점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은 경쟁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동안 배송 경쟁은 얼마나 싸게 파느냐였고, 그다음은 얼마나 빨리, 내일 새벽까지 보내느냐였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가까이에서, 지금 한 시간 안에 닿느냐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퀵커머스가 표준에 가까워질수록 거리가 곧 경쟁력이 되는 셈입니다.
소비자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내일 새벽에서 지금 한 시간으로 짧아지면, 멀리 있는 대형 물류센터 하나보다 소비자 가까이 흩어진 작은 거점 여러 개가 더 유리해집니다. 편의점과 생활용품점이 자기 점포를 거점으로 들고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가 풀리든 풀리지 않든, 근거리 배송 경쟁은 이미 시작됐고 그 거점은 대형마트 점포와 편의점, 생활용품점, 그리고 도심 곳곳의 소형 물류 거점으로 여러 겹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판매자 입장에서 중요한 질문도 달라집니다. 어느 채널이 규제에서 먼저 풀리느냐보다, 내 상품이 소비자와 가까운 어느 거점에 들어가 있느냐가 노출과 판매를 가르는 변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즉시배송이 표준에 가까워질수록, 판매자의 질문은 얼마나 빨리 보내나에서 어디에 두고, 흩어진 거점에서도 같은 품질로 내보내나로 바뀝니다. 거점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지금, 세 가지를 짚어봅니다.
1) 빠름에서 가까움으로, 재고를 모을 것인가 흩을 것인가
퀵커머스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거리입니다. 한 시간 안에 닿으려면 결국 소비자 가까이에 재고가 미리 가 있어야 합니다. 중앙 물류센터 한 곳에 모아 빠르게 빼내던 방식이 최적이던 시대에서, 같은 상품을 여러 근거리 거점에 나눠 두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셈입니다. 문제는 재고를 흩을수록 거점 수만큼 품절과 과잉, 재고 정확도의 부담이 함께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즉시배송의 진짜 비용은 배송 그 자체가 아니라, 흩어진 재고를 관리하는 데서 생깁니다.
2) 내 상품이 1시간 배송에 맞는 상품인가
편의점과 생활용품점, 도심 소형 거점은 회전이 빠르고 부피가 작은 상품에 맞춰 돌아갑니다. 객단가가 높거나 회전이 느리거나 부피가 큰 상품을 여기에 분산해 두면, 가까이 둔 효과보다 재고를 쪼갠 비용이 더 커집니다. 모든 상품이 근거리 거점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고, 익일이나 새벽배송이 여전히 더 나은 카테고리도 분명히 있습니다. 내 상품이 어느 쪽인지부터 가르는 일이 거점을 늘리는 결정보다 먼저입니다.
3) 거점이 늘수록 흔들리는 출고 품질의 일관성
한 곳에서 직접 챙기던 출고가 여러 거점과 점포 인력으로 나뉘면, 거점마다 무엇이 어떻게 나가는지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같은 주문이 어느 거점에서 처리되느냐에 따라 포장과 정확도가 흔들리면, 소비자에게는 같은 브랜드의 품질이 들쭉날쭉하게 보입니다. 빠르게 닿는 일보다 어렵고,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질문은 흩어진 거점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출고가 이뤄지는가입니다. 거점마다 출고 시점의 기록이 같은 형식으로 남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거점에서 무엇이 나갔는지 되짚을 근거가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이, 거점 수를 늘리는 결정만큼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규제는 14년째 제자리지만, 퀵커머스의 거점은 이미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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