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사 풀필먼트 진출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진이 11번가 풀필먼트 센터를 5년간 전담 운영하기로 했고, CJ대한통운은 개인 간 배송 브랜드 '보내오네'를 출시했습니다. 배송이라는 본업의 경계 바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흐름 자체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지금은 그 성격이 '기회 탐색'에서 '생존 전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택배사의 서비스 범위가 넓어질수록 판매자와 브랜드가 물류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져야 합니다.

택배사가 서비스 영역을 넓히는 배경에는 단순한 성장 전략 이상의 구조적 압력이 있습니다. 한진의 사례에서 직접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2022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선 조현민 사장 체제에서 한진은 "과거 물류 단가 경쟁에 치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플랫폼 서비스로 전환"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이 방향 전환 이후 영업이익이 12.1% 성장(1,122억 원)했습니다.
외부 환경도 이 전환을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3년 8개월 만에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하면서, 운송 고정비가 택배사의 수익성을 직접 압박하고 있습니다. 유류비는 택배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인데, 배송 단가를 올리는 데는 시장 저항이 큽니다. "싸게 빨리"라는 기존 경쟁 구도만으로는 마진을 확보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이고, 이 상황에서 택배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배송 이외의 가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압력에 대한 택배사들의 대응은 제각각이지만, 향하는 곳은 같습니다.
한진은 플랫폼 물류거점 전담이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11번가의 수도권 풀필먼트 센터 4개소, 총 2만 6천 평 규모의 시설과 인력, 자동화 장비를 5년간 전담 운영합니다. 월평균 이용자 860만 명 규모의 대형 플랫폼 물류를 직접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배송에 보관과 관리, 데이터를 더하는 모델이며, 이와 별도로 소상공인 택배 플랫폼 '원클릭', 인플루언서 커머스를 지원하는 '원스타'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CJ대한통운은 다른 카드를 꺼냈습니다. '보내오네'라는 개인 간 배송(C2C) 브랜드를 만들어 중고거래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기존에 이커머스 고객의 '받는 경험'에 집중했던 서비스를, 택배를 보내는 사람의 경험까지 브랜드로 설계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중고거래 같은 불황형 소비가 급성장하고 있고, 지난해 당근과 배송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바로구매 전국 배송까지 전담하면서 이 시장의 물류 인프라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풀필먼트 전문기업인 아워박스도 비슷한 시기에 IPO를 공식화했습니다. 올해 매출 목표를 1,300억 원으로 높이고, 카페24와 시너지를 기반으로 글로벌 물류 확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 회사의 방향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배송이라는 단일 기능에서 벗어나, 보관과 관리, 브랜딩, 데이터까지 아우르는 물류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택배사가 풀필먼트, 브랜드 서비스, 플랫폼 비즈니스로 영역을 넓히면, 판매자와 브랜드 입장에서는 한 파트너에게 맡기는 범위가 그만큼 넓어집니다. 배송만 맡기던 관계에서, 보관과 재고 관리, 출고 품질까지 의존하는 관계로 바뀌는 것입니다. 맡기는 영역이 커지면 편리해지지만, 동시에 점검해야 할 것도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물류 파트너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비교하던 것은 배송비 단가와 배송 속도였습니다. 하지만 택배사가 풀필먼트까지 맡는 구조에서는 비용 구조 자체가 달라집니다. 건당 배송비만 따지던 시절과 달리, 보관료와 작업료(피킹, 패킹), 반품 처리 비용까지 포함된 복합 과금 체계를 이해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동일한 건당 단가를 제시하더라도 보관 기준이나 반품 처리 조건에 따라 실제 비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영 지표의 공유 수준도 점검 대상입니다. 풀필먼트를 맡기면 재고 관리부터 출고까지 상당 부분을 파트너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이때 재고 데이터가 자사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연동되는지, 오출고율이나 오배송율 같은 운영 품질 지표를 정기적으로 공유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체계가 없으면, 클레임 대응은 물론이고 반복적인 품질 저하를 개선하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살펴야 할 것이 파트너 교체의 유연성입니다. 배송만 맡길 때는 택배사를 바꾸는 것이 비교적 간단했지만, 풀필먼트까지 묶으면 재고 이관, 시스템 연동 해제, 신규 센터 세팅까지 수반되어 전환 비용이 커집니다. 계약 시점에 데이터 이관 조건과 재고 반출 절차를 미리 확인해 두지 않으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져도 쉽게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택배사의 서비스 확장이 가속되는 지금, 판매자와 브랜드가 점검해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복합 비용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위탁한 운영 과정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체계가 있는지, 그리고 파트너를 교체해야 할 때 과도한 전환 비용에 묶이지 않을 구조인지. 배송비만으로 파트너를 고르던 관행은 이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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